더글라시즘
한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전시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상업갤러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한 명의 작가가 결과물로 남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는
작가라면 더욱이 그렇다.
이런 점에서
킴킴갤러리의 더글라시즘은 신선한 점을 가진다.
더글라스
파크와 그와 협업했던 이들의 작업들을 전시하게
되는데,
이것은
단체전인 동시에 더글라스 파크의 개인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협업이
근래 미술계에 큼직한 화두로 떠오르게 되면서 그로부터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글라시즘
페스티벌이 진행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킴킴갤러리가
기획했다는 점일 것이다.
킴킴갤러리는
정해진 공간에 있는 갤러리가 아닌,
작업에
적절한 공간을 찾아 그때 그때 다른 곳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갤러리이다.
사실 이
같은 형태의 갤러리가 훨씬 진작에 생기지 않은 것이
아쉽고 현 미술제도가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킴킴갤러리의 진행방향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작업에
제일 잘 어울리는,
그로써
작업을 ‘최고’의 상태로 끌어올려준다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작가가
화랑주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곳.
작가는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고,
이것이
예술의 ‘순수한’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더글라시즘 페스티벌은 더글라스 파크라는 예술가를
집중조명한다.
갤러리가
작가를 이렇게나 큰 규모로 알리려 한다는 것은 예술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을
미술계에 프로모션 해준다.
후원자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후원자처럼 물질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있지만,
작가의
작업위주의 전시기획은 ‘전적으로 밀어준다’는
점에서 후원과 비슷해보인다.
더글라시즘을
통해 던지는 담론과 질문은 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고,
느낄 거리도
많을 것이다.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과 협업들을 보여주는 더글라시즘
작업들에서 일단 예술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더글라시즘 페스티벌이 킴킴갤러리라는 작업의 일환인
갤러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떠올리면 한 번 더 질문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글라시즘은 더글라스 파크라는 인물의 다양한 작품과
협업의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술 제도에
관해서도 건드리는 복합적인 페스티벌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Monika
K. Adler
Monika
K. Adler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폴란드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비디오아트,
영화,
다큐멘터리
필름,
연기,
사진을
주요매체로 사용한다.
그녀는
독일인,
집시,
유대인의
복잡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그녀의
가족은 국가사회주의,
또
동시에 소비에트 연방 자본주의의 박해 아래 고통받았다.
그녀의
할머니는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고,
따라서
그녀의 어린시절 주변은 질병과 죽음
관련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개인과 가족의 역사를 가지고,
감춰지고
비밀스러운,
거부되었고
잊혀진 것들을 작업으로 이끌어 나간다.
초점이
사라진,
독단적인,
반동적며
역효과를 낳는 이슈를 찾는다.
전쟁의
충격,
분쟁,
사건,
사회적
상황과 정치체제.
이러한
모든 인류존재의 양상들,
그리고
그것의 불가피한 망각이 그녀의 스틸사진들과 영상작업들을
이룬다.
그녀의
깊고 강력하며 개인적인,
도상학적이고
상징주의적인 작업들은 공유되며,
심지어
강화된다.
이러한
작업 결과물들은 치료적 행위로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작업과 결과물의 모든 양상을 퍼포먼스와 치료의 행위,
카타르시스와
엑소시즘;
모델들과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그들의 창의적 표현의 시야를
가능케 함으로 여긴다.
작업에는
여성이 주로 등장하지만 그녀는
페미니즘에 관련을 두지는 않는다.
예술에서든,
삶에서든지.
그녀는
여성을 대변하며 여성성의 개념을 재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드로 주로 나타나며,
이전
예술에 있어서의 ‘여성’을 재작업한다.
아들러의
작업은 원시적이고 변치않으며,
전인류적이고 솔직하다. 그녀는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그럼으로써
삶과 예술의 경계가 진정 흐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팀의
역할
디자인팀이 전시기획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시각적인
매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를 기획하며 새로운 담론을 펼치려
할 때,
결과적으로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따라서 홍보 시에 사용될 홍보물을
보다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역시 예술의 큰 한
갈래라고 보는 입장으로서 디자인이 1차원적으로
시각적 즐거움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순수예술을 다루는 전시에서
전시 홍보물이 단순히 예쁘기만 하면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전시 홍보물의 디자인은
어렵다.
전시정보에 대한 효과적 전달성,
시각적 즐거움,
예술성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본인이 직접적인
디자인을 하게 되진 않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보다 효율적이고 예산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쇄소와의 커뮤니케이션 등 시각물
디자인에서 필수적인 부분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또한 디자인팀과 홍보팀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둘의 경계는 걸쳐져 있다고
생각하며,
적극적 자세로 임하려고 한다.
1112123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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